여행메이트, 당신의 여행에 가치를 더해줍니다.          


<러시아 여행 일기>

죄와 벌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우리 일행은 그리브초바 거리 아파트에 묵었습니다. 그리브초바 거리와 직각을 이루는 카즈나체이스카야 거리 7번지에는 <죄와 벌>이 탄생한 집이 있습니다. 그 바로 다음 블럭인 그라쥐단스카야 19번지에는 '라스콜니코프의 집'이 있습니다. 이 거리와 운하 곁을 지나며 오래 전 <죄와 벌>을 읽으며 스스로 던졌던 질문들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악인 한 명을 죽여 수백 명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 해묵은 질문은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심판자이고 어떤 죄를 저질러도 용인될 수 있는 의인이라 여기는 인간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겸손한 여행

드디어 25박27일의 긴 러시아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시작부터 몇 가지 악재가 겹쳤습니다. 동반자들의 건강 문제와 환율 폭등입니다. 그런데 이런 악재들이 저에게 보내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겸손하라." "자만하지 말라." 이번이 네 번째 러시아행입니다. 자신 있다며 자만할 때가 되었지요. 그런데 출발 전의 악재들이 저를 결코 방심하지 않도록 하는군요. 이번 여행에서 하지 않을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욕심내지 않을 것, 서두르지 않을 것, 조바심 내지 않을 것. 암튼 이번 여행의 주제는 '겸손한 여행'입니다.

옴스크

옴스크는 러시아 내전 때 백군의 사령부가 있던 곳입니다. 콜차크 제독은 미국으로 추방되었지만 조국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곳 옴스크에 사령부를 차렸습니다. 옴스크는 당시 그들에게 운명의 도시였던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50년 이곳 옴스크로 유배되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도 없던' 황량한 유배지에서 4년을 지낸 그는 유형 생활의 체험을 <죽음의 집의 기록>이라는 소설에 실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죽음의 집의 기록>은 육체적 고통보다 그곳에서 부딪힌 인간 군상 이야기에 더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육체의 고통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이 훨씬 더 오래 기억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실마리만 가지고 취재하는 건 참 어렵지만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카잔

타타르 자치공화국의 수도 카잔은 뜻밖에 만난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타타르 인은 칭기즈칸의 후예라 볼 수 있습니다. 하얀 카잔 성 안에 정교회 성당과 나란히 서 있는 이슬람 모스크는 1552년 러시아의 이반 뇌제가 침략했을 당시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된 것입니다. 카잔은 18세기 후반 일어난 푸가초프의 난 때도 도시가 유린되는 화를 겪었습니다. 카잔은 타타르 어로 '가마솥'을 뜻한다고 합니다. 현재의 도시 카잔은 칭기즈칸도, 이반 뇌제도, 푸가초프도, 무슬림도, 정교회 교도도 모두 뒤섞여 하나의 아름답고 새로운 문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도시 이름처럼 역사와 문화의 '멜팅 팟'을 이룬 셈입니다.

'남상(濫觴)'

저는 네 번에 걸쳐, 러시아의 열 다섯개 도시에 다녀왔습니다. 대개 그 도시에는 큰 강이 가로질러 흘러갑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지요. 강이 있기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그래서 도시가 생겼을 테니까요.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둘러보면 벌판만 보입니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그 많은 물이 생겨났을까요?

'남상(濫觴)' 술잔에 넘칠 정도로 적은 물이라는 한자어로, 양쯔강 같은 큰 강도 그 정도의 아주 작은 물줄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넓은 러시아 벌판을 적시며 흘러가는 강물도 한 잔 정도의 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큰일은 작은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교훈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