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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동차를 좋아하는가? 

이 질문은 ‘왜 남자로 태어났는가?’ 처럼 말문이 막히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어렵다. 최초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은 도서관의 서재처럼 어디서 어떤 기억을 어떻게 꺼내야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단지 어떤 풍경이 머리 속에서 떠오른다.

국민학교 5학년, 자동차의 이름을 줄줄이 기억하다

한참 개인용 컴퓨터(PC)의 인기가 높아졌다. 나 역시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원의 위치는 동네에서 제법 큰 도로인 왕복 8차선 도로 앞에 있는 5~6층짜리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컴퓨터로 visual Basic이니, C+라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컴퓨터 언어를 배웠다. 그렇게 지루한 코딩 수업을 듣던 중 바라본 창밖의 풍경이 그를 사로잡았다. 지나가는 차들의 지붕들이 보였다. 컴퓨터 학원 앞 신호등에 걸린 자동차들을 구경했고, 친구와 자동차 이름 맞추기 게임을 했다. 나는 지나가는 차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다. 

대우 살롱, 콩코드, 그랜저, 소나타, 프레스토.

누가 가르쳐 준 기억이 없는데, 그는 차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풍경은 지금도 기억에 깊이 남아있다.

처음 잡은 운전대

수능을 마친 19세 겨울,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했다. 기능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20시간 운전을 해야 했는데, 그 시절 운전 전문학원에는 항상 학생들이 넘쳐났다. 그래서 하루에 한 시간밖에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월화수목금. 그렇게 4주의 시간 동안 운전을 배웠다. 처음에는 오락실에 있는 게임처럼 생긴 시뮬레이션 주행을 했다. 그리고 1톤 트럭으로 2단 출발과 언덕에서 반 클러치 사용법, S자 코스와 T자 코스, 그리고 병렬 주차까지 순서대로 배워 나갔다. 겨울이어서 눈이 왔고 날이 추웠지만, 엔진이 엉덩이 밑에 있는 포터 트럭에 타는 순간은 언제나 따뜻했다. 다녔던 학원은 산 밑에 있어서 공간을 잘 활용하지 못해서 였거나, 그냥 학생들이 사고를 낼까 봐 그랬는지 고속 변속 구간은 변속하지 못하게 교육했다. 4주 동안 그는 1단과 2단, 그리고 후진만 변속했다. 그 이후인 3단 이상의 세상은 미지의 세계였다. 

기능 시험에 합격한 후, 도로 주행까지 많은 학생이 대기하고 있었기에, 다시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기능시험에 합격했지만, 그것은  운전 실력이 아닌 공식을 따른 운전기술이었다. 어깨에 노란 선이 보이면 핸들을 두 바퀴 반 돌려서 후진하고, 백미러에 코너가 보이면 핸들을 다시 풀어서 직선으로 맞추고 하는 공식이 학원에는 존재했다. 운전은 몸에 체화된 능력이 아니고, 단지 수학 공식 외우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지네가 자기 다리의 숫자와 움직이는 순서를 생각하며 걸으면, 순서가 꼬여서 넘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지네가 된 것처럼 운전을 하는데 순서가 엉킬 것만 같았다.

긴 기다림이 지나고 도로 주행의 시간이 되었다. 이제 눈 대신 비가 왔다. 길에는 서서히 봄이 오고 있었다. 도로주행은 총 10시간의 교육으로, 두 시간씩 5일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운전면허 시험을 보게 되는 순서였다. 시골길을 1톤 트럭으로 운전하면서 자연스러운 운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말 오고 가는 차가 하나도 없는 길에 들어섰다. 여유로운 강사님은 그냥 속도를 높이고 싶을 때까지 엑셀러레이터를 밟아보라고 했다. 그 순간 궁금했던 3단 이후의 세계에 드디어 들어섰다. 처음으로 5단 변속을 했다. 속도는 겨우 시속 80km 정도였지만, 매우 새로운 경험의 순간이었다.

자동차 대신 산 비행기 티켓

스무 살에 차를 사고 싶었다. 당시에 나온 대우 마티즈2 는 어딘지 모르게 매력적이었다. 차를 사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차를 살 수는 없었다. 여름방학에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 돈으로도 차를 사기에는 부족했다. 그리고 차는 그에게 사치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대신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비행기 표를 샀다. 일본 오사카로 여름에 혼자 떠났다. 지금도 그 풍경이 떠오른다. 아니, 그 풍경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일본으로 출발하는 날 공항의 출도착 알림판을 보았다. 그날 일본으로 출발하는 모든 항공편이 결항이었다. 그런데, 내가 타는 JAL만 정상 운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날 일본에는 32명의 사망자를 낸 초대형 태풍 ‘파북’이 상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 간사이 공항을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죽음의 위협을 직접 느끼게 되었다. 두 시간의 비행시간 내내 터뷸런스가 끊이지 않았다. 비행기 속에서 수직 낙하를 수차례 경험했고, 테이블 위의 물컵은 모두 쏟아졌다. 문득 이대로 짧은 생을 마감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려달라고 절실히 기도했다. 태풍은 거대했고, 작은 비행기 안에서 의지할 곳은 의자 손잡이 뿐이었다. 손에 땀이 나서 손잡이는 자꾸 미끄러졌다. 온몸이 긴장되어 나중에는 감기에 걸린 것처럼 온몸이 아팠다. 결국에는 아슬아슬하게 간사이국제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이후 비행기를 탈 때마다 두려움이 동행한다. 작은 난기류에도 긴장되며,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렇게 비행기를 무서워하는데 이렇게나 여행을 좋아하다니. 인생은 모순으로 채워졌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며, 여행할 때마다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후로도 수없이 많은 비행을 했다. 배낭여행을 하고, 자동차를 렌트해서 여행했다. 물론 지금도 여행을 한다.

프랑스 깐느에서의 첫 자동차 여행

유럽에서 처음 자동차 렌트를 했던 여행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프랑스 깐느에서 시트로엥 C5 를 렌트했다. 다섯 명이 C5를 타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프랑스의 고속도로는 시속 130km가 제한속도이다. 그 길을 시속 150km를 넘나들며 일곱시간 정도를 운전했다. 프랑스 남부의 고속도로는 언덕길 모양대로 만들어져서 고저 차가 심하고, 커브 길이 많았다. 한국에서 했던 운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운전이 즐거웠다. 도착한 스페인의 풍경도 아름다웠다.

이 렌터카 여행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호텔에서의 작은 사고 때문이었다. 차를 렌트하고 신이 나서 깐느의 해변을 달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일행들과 함께 웃다가 주차장 진입로에 있던 돌에 조수석 휀더를 긁었다. 주차장 입구에 왜 돌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첫 렌트에서 첫 사고를 쳤다. 치약을 가지고 와서 열심히 문질렀다. 그래도 긁힌 자국은 없어지지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차를 반납할 때, 추가 요금을 내면 어떡하지 걱정했다. 비싼 금액이 나오면 안되는데 생각했다. 낯선 타지에서 바가지를 쓰게 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full cover 보험을 들어 놓은 덕분에 추가요금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한 달 뒤 과속 벌금으로 추정되는 금액이 결제되었다.

독일 자동차 여행과 여행상점

독일 자동차 여행의 시작은 아내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자동차를 컨셉으로 여행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다행히 아내는 이해해줬고, 독일 자동차 여행은 그렇게 탄생했다. 독일에서 독일 자동차 오펠 코르사 를 렌트했다. 아우토반을 무제한 속도로 달리며, 자동차 박물관을 찾아다녔다. 1.0리터의 작은 엔진이어서 최고속도는 시속 200km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충분히 빠르고 짜릿했다. 비가 왔고, 새로운 길을 달렸다. 숙소가 없어서 헤맨 적도 있었지만 너무나 즐거웠고, 독일은 생각보다 로맨틱한 나라였다. 멋진 풍경과 멋진 자동차들, 무엇보다 오래되었지만 잘 관리된 차들이 많았다. 자동차의 역사는 현재와 함께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다. 

이 여행을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행상점을 알게 되어, 이 여행작품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의 여행 이야기는 미뤄두고 싶다. 여행 이야기는 역시 여행에 함께 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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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상점 여행메이트 송진욱 자동차를 타고 전세계를 누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