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Mate
당신의 여행 친구, 여행메이트를 소개합니다.
Profile |
- 한국광관공사X여행노트 ‘水려한 합천여행’ 콘텐츠 출연 -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DISCOVERY EXPEDITION)갈라파고스 원정대 활동 - 클룩(KLOOK) 태국 송크란 물축제 진행 - 라이프쉐어X야반도주 ‘서울, 야근대신 야반도주’ 무박2일 프로그램 운영 - 해양수산부 '2017 해양관광 ·레저 네트워크 구축 워크숍'중 세션강연 - 전역을 앞둔 년 장병들과 함께하는 해외 진출, 여행관련 병영멘토링 - 샘소나이트 라이프이즈저니 제 7회 여행클래스 강연 - 여행관련 강연 (롯데백화점,현대백화점 문화센터) - 도서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정해진 대로 살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매일' 출간 (2018년 8월) - JTBC '트래블러' 작가 |
여행경력 |
- 2005.12. ~ 2006.02. 인도 - 2007.03. ~ 2007.05. 터키,이집트,요르단,시리아 - 2014.10. ~ 2016.09. 24개국 - 2017.09. ~ 2017.10. 일본 - 2017.12. ~ 2018.01. 대만 - 2018.05. ~ 2018.05. 갈라파고스 제도 |
2004
20대 초반, 같은 대학의 같은 과 동기. 비릿한 스무 살에, 그렇게 만났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름 모를 스무 살들이 대강당에 빽빽이 집합해 있던 2004년의 어느 봄 날, 신변잡기부터 연예인 가십까지 이어지던 수다는 어쩌다, 여행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 대학생들의 로망이라는 유럽여행부터 시작해 5대양 6대주를 훑고, 종국에는 ‘인도’가 화제에 올랐다. 그리고 좌중은 전에 없이 둘로 갈라졌다. ‘아이고 거길 왜가, 더럽지 않아? 위험하지 않아?’ 미간이 찌푸려진 몇몇과, ‘재밌겠다, 가고 싶다. 거기 물가도 싸지 않나?’ 눈빛이 빛나기 시작한 몇몇. 그들은, 후자였다.
2005
스물한 살 겨울, 채 종강도 하지 않은 날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는 절절한 손 편지와 날림으로 미리 완성한 과제를 과사무실 문틈으로 밀어 넣고 인도행 비행기에 대차게 몸을 실었다.
한 달 반의 인도여행에서 얻은 것은, '아.. '상식'이란 그저 '옳다고' 믿고 있던 것이구나.’ 란 깨달음. 더군다나 그 믿음이란 것은 나고 자라온 환경과 문화의 산물이었을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동시간대 같은 지구상에서 그토록 다른 모습의 사람이, 풍경이,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눈을 감으면 당장 여행의 모든 순간이 눈앞에 있었고, 손에 잡혔고, 맡을 수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중력과 시간의 방에 다녀온 느낌. 아주 특별한 첫 경험이었다.
2007
3학년으로 올라가던 시기, 휴학계를 내던졌다. 휴학의 사유는 여행. 여행경비를 번다. 통장에 계획했던 숫자가 찍히고, 이집트를 시작으로 요르단, 시리아를 거쳐 터키까지- 2달간의 배낭여행이 시작됐다. 첫 인도 여행이 시행착오의 연속, 물음표만이 가득한 풋풋한 첫사랑이었다면, 두 번째 여행은 적당한 여우 짓도 할 줄 알게 된 진정한 ‘연애’였다.
그 두 달간의 달콤했던 연애, 아니 여행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 거나하게 취했던 새벽, 홍대 놀이터에서 하릴없이 그네를 타며 두서 없는 혀 꼬부라짐들 속에서 또다시 시작된 지난 여행 이야기… 그리고 술김에 이런 다짐들이 뱉어진다. ‘우리.. 서른 전에 꼭 세계여행 떠나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 너무나 많았고, 여행 해야할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2008~2013
위선임
회사에서 위선임은 고객-아르바이트생-인턴-사원-선임을 역임했고, 밑바닥부터 올라간 케이스였다. 새로이 그녀를 알게 되는 대부분이 의아해 했던 그녀의 '전공'과 '직업'의 괴리-종사하는 업을 설명할 자리가 있을 때 마다 장난 삼아 붙이던 '전공과 1g의 연관성도 없다'는 수식어는, 장난이라기엔 지극히 진실이었다. '의류학'을 전공한 그녀는 그 어떤 연관성을 찾기 힘든 HRD업계에 몸담았다. 이 또한, 나름의 '사유'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취준생의 신분으로 방황할 때, 그녀를 좋게 봐주신 당시 교육 담당자 분으로부터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았고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고맙게도 인턴직 제의를 받았다. 아버지가 별안간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후, 졸지에 세대주가 되었던 그녀는 연고도 없던 부산까지 면접을 보러 다닐 만큼, 취업에 물불을 가리지 않던 시기였기에 곧 회사에 들어갔다.
참으로 열심히 일했던 시기가 있다. '일' 자체 보다는, 그로 인해 받는 '인정'이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그 '인정'에 취해, 일을 사랑한다고도 느꼈다. 계속되는 야근이, 압박이, 어쩐지 하나도 힘겹지 않았다. 일은 어느새 손에 익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습관대로 처리할 수 있었고, 그 습관화된 처리방식에, 고민 대신 딴 생각들이 둥지를 틀었다. 불평불만을 하기 시작했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그녀는 지루해져갔다.
입사 4년차-야근과 술자리가 반복되며 택시로 출퇴근을 하던 어느날-기계적으로 엑셀을 매만지던 오후 업무시간, 낯선 저림증세가 그녀의 오른팔을 타고 흘렀다. 처음 MRI기계 안에 눕게 되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던 병원에서 목디스크 중증판정을 받고, 예기치 못했던 입원과 수술, 남의 일 인줄로만 알았던 병가. 병실에 링거를 꽂고 누워있던 그때도 '퇴사'라는 것은 안중에 없었다. 그러나 스물아홉-진심으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충동적으로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힌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새로운 길을 나설 '용기'를 준비한다. 이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동기가 아닌-엄마에게 보내드릴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이유가 아닌-진정으로 내가 잘 할 수 있고, 또 즐기는 일을 향해 굵고 힘찬 새로운 점을 앞으로의 내 인생에 찍고 싶다! 그리하여-서른, 위선임은 퇴사한다.
2014
김멋지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오후, 일을 마친 고단한 몸을 앉혀놓고 돼지껍데기를 구워먹으며 뱉어진 “예전에 꾸었던 꿈, 세계여행- 우리 이제 가보자”란 선임의 말에 멋지는 단 3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 그 후 만나는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그들은 떠나고 말거라는 다짐을 입 밖으로 내뱉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인들에게 하는 말이자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녀의 세계여행 계획을 모르는 단 두사람, 엄마, 아빠에게 이젠 정말 말씀을 드려야 했기에, 부모님을 호출한다. 거실에 곱게 앉혀드리고, 본론부터! 선임과 여행하면서 썼던 글을 펼치며 "어때? 재밌지? 나 1년동안 세계여행 하면서 이런 거 하려고." 장난인 줄 알고 웃던 아빠는 이내 방으로 들어가고, 엄마는 그녀 옆에서 한숨만 푹- 쉰다. 퇴근 후-죄송한 마음과 꿈에 대한 진심을 담아 쓴 손편지를 손에 쥐고 현관문 앞에 서성거린다. 아무렇지 않은 척 문을 열고 들어간다. 슬쩍 아빠 옆에 편지를 놓고 나와서는 엄마 앞에 자리잡고 앉아, 이쑤시개 하나 집어 들고 조용히 외숙모가 보내준 올갱이 속을 파내기 시작한다. 죄송하고, 고맙고, 또 죄송하고, 사뭇 진지하며 담담하게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잘디 잘은 올갱이 속으로 반찬통 하나 가득 채우고 나니 손 끝에 진한 올갱이 향이 베어 쉬 지워지질 않는다. 이틑날, 아버지는 욕실에 들어가시다 말고 고개를 빼꼼 내미시더니 "언제 떠날거냐." 하고 물으셨다. 드디어 승낙 완료-
멋지&선임
2014년 10월 6일, 월요일 오전 9시경.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요병에 시름 거리며 출근할 시각, 인천공항 국제선 출국장을 향해 걷던 방년 30세 여자는 생각했다. ‘이거, 생각 같지 않은데…?’ 그녀는 생각만큼 아름다운 모양새가 아니었다. 출국 전 며칠은 그야말로 전쟁. 막판이 되어서야 준비하는 몹쓸 성격을 남 주지 못했던 탓이었다. 최장 2년을 바라보고 가는 여행의 짐을 당일 새벽이 되어서야 싸기 시작해 밤을 꼴딱 새웠다. 공항마저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다. 아시아게임 덕분에 인천공항은 도 떼기 시장이었다. 곧이어 멋지도 도착!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선임처럼 밤새 짐을 싸고, 오는 길에 울어 제낀 멋지 역시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공항 내 카페에 앉아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노닥거리다 보니 집 나갔던 제정신이 차츰 복귀했다. 그리고, 실감이란 감정도 함께 왔다. 정말, 떠나는구나! 인천발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하여, 여권을 들고 체크인 절차를 밟았다. 머리에 예쁜 리본 핀을 얹은 언니의 미간에 미세한 주름이 잡혔다. 예상치 못한 정적이 흘렀다. 뭐지? 왜지? 배낭 무게도 수하물 규정에 철저히 맞췄는데? 그리고 언니가 던진 두 마디의 질문과 한 문장.
“유럽에서 나가는 티켓 구매하셨나요?”
“아니요.”
“그럼 유럽에 거주하시는 분이신가요?”
“예? 아, 아니요.”
“그럼 출국이 안되십니다.”
“………………………………………”
단호하다 못해 정갈하기 까지 한 그녀의 말. 찰나이자 억겁의 시간이 흐르고, 사고가 정지한 머릿속으로 하나의 키워드가 떠올랐다. ‘쉥겐조약’. 그렇다. 유럽을 무비자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90일 이내에 유럽에서 나가는 티켓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불법체류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애써 미소로 포장한 듯한 직원 언니는 대답했다. “유럽에서 나가는 티켓을 구입하세요.” “지, 지금요?” “네, 1시에 탑승 마감이에요. 서두르세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야속하게도 시곗바늘은 12시 반을 지나치고 있었다. 빌어먹을!!! 난데없는 인천공항 배 질주 시합이 시작되었다. 망설일 시간 따위 없었다. 공항 내 인터넷 가능한 곳을 찾았다. 항공권을 사야 했다. 뭐라도 검색을 해야 하는데 유럽 어느 도시에서 떠나야 할지, 어떤 도시로 가야 할지, 그것은 또 언제일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마침내 쿠바 행 티켓을 끊었다. 비행기표를 슈퍼에서 껌 사듯 샀다. 급히 프린터를 찾아 출력까지 하고 나니 탑승 마감시각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5분. 뛰어!!!! 아까 떠올랐던 문장이 다시금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거, 생각 같지 않은데…?’ 한눈에 봐도 이것들 모자라는구나, 싶었던지 아까의 그 미스 찌푸린 미간 언니는 그녀들이 줄을 서지 않고 바로 통과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덕분에 슈퍼패스로 체크인 완료. 지인들과 제대로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탑승할 비행기를 향해 다시 뛰었다. 라스트 콜이 울리고 있었다. 태어나 가장 절박하게 달린 끝에, 가장 마지막으로 탑승구를 통과한 승객이 될 수 있었다. 극적으로 기내 좌석에 궁둥이를 들이민 시각은, 이륙 시간을 단 2분 남긴 시점. 안전벨트를 채 채우지도 못했는데 비행기가 이륙을 시작했다. 짜릿한, 시작이었다.
2014~2016
718일 간의 세계여행
2017
요새 바쁘지? 책도 쓰고 강연도 하고 잘 나가네. 이제 돈 좀 많이 버니?
저런 인생이 얼마나 가겠어. 저것도 다 한 때지. 미래는 준비하고 있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정신없이 바쁠 때도 있지만, 시간이 흘러넘치는 때도 있다. 각종 SNS 채널에서 ‘좋아요’와 ‘하트’를 많이 받는 것이 잘 나가는 것의 기준일까? 돈은 벌고 있으나 많지는 않다. 여름, 초유의 보릿고개가 찾아왔다.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돈이 없었다. 돈이 없어 끼니를 걸렀다. 짠내가 풀풀 날리는 생활이었지만 초라하지 않았다. 열심히 살고 있기에 부끄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의연하게 버텨 내는 스스로가 대견하다.
언제까지 그녀들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회사를 나온 지 3년이 흘렀다. 그중 2년은 여행을 했고 귀국 후 1년은 ‘버티고’ 있다.
그러나 야반도주의 삶이 누구 하나 마음의 작은 울림을 준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 그 미세한 파장이, 작은 날갯짓이 종국에는 차마 언어로 형상화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임과 멋지도 그랬으니까. ‘여행가’가 되려느냐, ‘작가’가 되려느냐는 모르겠지만, 그 작은 시작을 함께하는 사람이고 싶은 두 여자. 특별히 이타적인 성격이어서가 아니다. 영향력을 받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스스로를 위해 그렇게 산다. 그들은 는 그럴 때 행복한 사람이니까.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어제보다 조금 더 알아가는 것. 이것이 그들의 먹고사니즘, 곧 ‘미래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