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식 여행메이트

당신이 몰랐던 진짜 이스라엘 여행

Introduce the Travel Mate

당신의 여행 동반자, 여행메이트를 소개합니다.

Profile
현)
- 여행상점 주식회사 대표이사
- 여행상점 여행메이트

전)
- ㈜진성항공여행사 기획개발 팀장 및 대표 대행
- 기독여행 브랜드 ‘위드갓’ 공동대표
- 성악가
여행경력
- 1996 : 미국(뉴욕, 시애틀)
- 1997 : 러시아(모스크바, 상뜨 빼쩨르부르그)
- 2000 : 중국(연길, 북경)
- 2004 : 태국(방콕)
- 2007 :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터키, 미국(뉴욕)
- 2008 : 러시아(블라디보스톡), 중국(상해), 홍콩
- 2010 : 터키, 일본(도쿄), 중국(연길), 러시아(블라디보스톡)
- 2011 : 이스라엘(2회), 터키, 그리스
- 2012 : 중국(연길), 일본(오사카)
- 2013 : 이스라엘(2회), 프랑스, 이탈리아
- 2014 : 터키, 그리스
- 2015 : 이스라엘, 태국(방콕)
- 2016 : 베트남, 프랑스
- 2017 : 이스라엘(2회), 요르단


1993년

윤형식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어느 날 유명한 성악가 부부 앞에서 성가대 대표로 노래를 부르고 그들의 추천이 계기가 되어 아무런 의심과 고민없이 ‘성악가‘ 라는 인생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1996년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 회사 동료로부터 미국 음대 유학 제안을 받았다. 중3 어린 나이에 미국은 그저 로망이었고, 그의 마음은 이미 미국에 있었다. 미국 비자를 받기가 어렵던 시절, 그의 손에 쥐어진 10년을 살 수 있는 장기 비자는 하나님의 계시 와도 같았다. 유학 준비는 매우 빠르게 진척되었고 음악 선생님이었던 담임 선생님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뉴욕 맨하탄 음대에 오디션을 보러 떠났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맨하탄 음대 합격 통지서가 날라왔고 본격적으로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허망하게도 재정적인 이유로 유학은 불가능해졌고 일련의 해프닝들은 그에게 성악가로서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끝났다.


2000~2005년

음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음대 생활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행사와 각종 모임 그리고 단합을 위한 얼차려… ‘이러려고 음악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결국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이러한 음대 문화가 싫어 1학년을 마치고 바로 군대에 입대했다. 복학 후 그토록 싫어했던 음대 문화는 여전했고, 복학생이어도 여전히 얼차려를 받았다. 대학 3학년. 아이러니하게도 성악과 학생회장이 되었다. 비록 그 자신은 힘들고 싫어했지만 후배들은 좋아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선배들과 싸워가며 정말 말도 안되는 도전을 많이 했다. 술없이 엠티 가서 미치도록 놀기, KBS홀에서 열리는 오페라를 준비하는 중 후배들에게 의례 행해지던 얼차려 대신 깜짝 이벤트 해주기 등 폐쇄적이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음대 문화에서는 미친 도전이었다. 그 때 본 후배들의 눈물을 시작으로 후배들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성악과도 달라졌다. 선배와는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던 후배들이 웃으며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네고, 이내 학교는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학생회 임원으로서 도전과 성과로 가득 찬 그의 대학시절은 정작 전공에 있어서는 밑바닥을 친다. 성대에 폴립이 생겨 고음이 불가능해졌고, 그의 목 상태로는 오페라 아리아는 어림도 없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으나 회복되지 않자 결국 그는 성악가로서의 꿈을 3학년이 저물어 가던 시점에 내려놓는다.


2006년

11월26일.

약 2년 반 동안 간암으로 투병 생활을 해오던 매형이 돌아가셨다. 당시 그의 누나의 나이가 29살이었고, 조카는 2살이었다. 이후 누나는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성악가의 꿈을 내려놓고 준비했던 신학교 진학은 동기도 학비도 모두 문제가 되어 내려 놓았다. 그리고  당시 여행사를 운영하시던 아버지를 돕기 위해 여행업에 뛰어든다.


2011년

잠깐 도와드린다고 들어간 여행사가 그의 직장이 되었다. 여행업에 종사하면서 적잖은 나라들을 방문했다. 그런데 수많은 나라 중 묘한 매력으로 그를 사로잡은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 이었다. 크리스천인 그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가 발견한 이스라엘은  종교적인 가치를 뛰어넘어 여행지로서도 굉장히 매력적인 땅이었다.


2011년 9월에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이스라엘 배낭여행을 떠난다. 이 때가 벌써 3번째 방문이었다. 우리나라 경상북도 크기에 해당하는 매우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지중해, 홍해, 사해, 갈릴리 호수를 비롯해 사막, 광야, 평야, 고원 등 지구상의 모든 자연환경을 다 만날 수 있는 신비로운 곳이었다. 그만큼 가는 곳 마다 예상 외의 풍경이 펼쳐짐에 놀라고 그 모습이 하나같이 경이롭다는 점에서 또 놀랐다. 이 배낭여행은 결국 이스라엘을 그의 제2의 고향으로 만들어주었다.


2017년

여행업 10년차에 접어들었고, 여행업 구조의 폐단과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며, 돌팔구를 찾는 일을 쉬지 않았다. 학창 시절부터 그의 정체성이 된 불합리한 구조와 현실을 깨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여행업에서도 꺼지지 않았다.

2017년 6월, 사람이 살아나고 새로워지는 진짜 여행을 만들고자 하는 고민에서 여행상점이 문을 열었고, 같은 해 8월 ‘리얼 이스라엘 로드트립’을 기획하여 떠난다.

여행자들은 사막 한가운데서 먼지와도 같은 자신을 발견한다. 이내 선물처럼 나타나는 샘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고 자연의 은혜를 경험한다. 광야를 달리며 끓어오르는 가슴 속 가능성들을 느끼고 망망 대해를 바라보며 지난 날과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펼쳐 놓은 이스라엘. 성경 속 이야기와 크리스천들의 행적 그리고 그들의 정신을 농축해 놓은 땅. 차 한대에 몸을 싣고 함께 달리는 동안 여행자들은 웃고 울기를 반복했다.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자신을 발견하고, 위로하고, 부족함을 뛰어넘는 그런 힘이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 여행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다. 여행을 필요로 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이 허락되어야 하고 단 한번을 가더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여행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재확인 했다. 무엇보다 함께하는 여행자들의 회복과 행복을 지켜보며 그 역시 큰 감동과 위로를 얻는다. 또 한번 문제들에 맞서 시도한 도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오늘도 윤형식은 ‘모두가 행복한 여행,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여행’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